미소짓는 아내 - 1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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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하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안방에는 깊고, 일정한 숨소리뿐만이 들려오고 있다. 이따금 부스럭거리는 이불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누군가가 잠꼬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으, 으흠.”
목이 타는 듯 괴로움이 섞인 목소리가 안방을 울린다. 이에 호응하듯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깨어나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잦아진다. 곧이어 짙은 어둠이 깔린 안방에는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리며 침대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앉는다.
“……물.”
갈라진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안방 침대의 주인 중 하나인 안정수다. 과음 때문일까? 아니면 격렬했던 불장난 때문일까?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자의반 타의반 잠에서 깨어났다.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한동안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던 안정수는 그제야 이곳이 자신의 집이란 걸 깨달았다.
‘몇 시지?’
어둠이 짙게 깔린 걸로 봐선 아직 한밤중이란 걸 알 수 있게 해주지만, 안정수는 곧이어 한 가지 사실에 지금 시간에 대한 확실을 잃어버렸다.
‘이 시간에 아내는?’
술에 취한 자신을 데려다 준 건 김우영 부장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이 침대까지 옮긴 건 필시 아내가 틀림없을 텐데 보이질 않는다.
‘……자정은 훨씬 넘은 시간이 확실한데?’
정확한 시간은 몰라도 날짜가 바뀌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게 시간에 대한 의문이 계속될 줄 알았던 그의 사고는 안방 문 밖에서 들려오는 털썩하는 무언가가 넘어지는 소리에 상념이 멈췄다.
‘무슨 소리지?’
어차피 물을 마시려면 마루로 나가야 하기에 안정수는 두통이 밀려오는 머리를 붙잡고, 힘겹게 안방 문고리에 손을 올린다. 누구나 의식하지 않고도 문을 열 때는 자신이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열어 재끼지만 과음과 격렬한 불장난으로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깨질 것 같은 두통에 안정수는 안방 문을 열다말고 문고리를 잡은 채 밀려오는 두통에 잠시 괴로워 하는 사이 퍽 하는 둔탁하고 찰진 소리가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
잘못들은 건가 싶었지만 곧이어 그 둔탁한 타격음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자신의 귓가에 울린다. 안정수는 의아함을 느끼며 그 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문을 더욱 열려는 순간 그 소리가 묘하게 낯이 익다고 생각하고 벌어진 문틈 사이로 집안을 살펴본다. 마루에는 형광등 대신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보조등이 들어와 있고, 소리의 진원지는 마루보다 더욱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걸 확인하고 시선을 던진 순간 안정수는 얼어붙었다.
‘나, 나은이?’
현관문에 쓰러져있는 아내는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고 있고, 자신의 입을 필사적으로 틀어막아 새어나오려는 소리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순간 현관문에 달린 보조등이 훅 나가며 정적에 휩싸이자, 어둠 속에서 깊으면서도 쾌락이 절절이 묻어나는 남성의 거친 숨소리와 둔탁한 타격음이 안정수의 귀를 파고들고, 어둠에 적응되지 않는 안정수의 눈은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출렁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도, 도둑?!’
지금은 어둠에 휩싸였지만 잠시 보였던 현관문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묘하게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던 아내의 하반신과 이 거친 숨결의 주인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안정수가 패닉에 빠지려는 그 찰나 보조등의 불빛이 확 들어오며, 아내의 모습을 다시금 비춘다.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은 아내의 하반신에서 전해지는 강한 힘에 아름답게 출렁이고 있었으며, 때때로 반짝이는 물방울이 젖가슴에서 튀어 오르는 것이 보조등 불빛 아래에서 빛난다. 미묘하게 새어나오는 달콤한 아내의 신음소리와 몽롱하게 풀린 아내의 눈빛. 점점 집안을 채우기 시작한 야릇하고 뜨거운 공기를 느끼며 안정수는 당황한다.
‘……어?’
지금 아내의 하반신에서 연신 강한 힘으로 허리를 놀리고 있을 상대가 흉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기가 쎈 아내가 소리 한 번 못 지를 정도로? 게다가 묘하게 달아오른 아내의 표정을 본 안정수는 결국 패닉에 빠졌다. 안정수가 패닉에 빠지건 말건 현관문에서 연신 거친 숨결을 토해내던 남성이 신발장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아내를 짓누른다.
“헉?!”
안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지만 두 사람에겐 들리지 않았나보다. 안정수는 아내 위에 올라타 짓누르며 연신 허리를 내려찍으며 그 둔탁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남자를 알고 있다. 바로 자신의 상사 김우영 부장이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김우영 부장이 여성편력이 심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부하직원의 아내를 강제로 범할 줄은 몰랐다. 문을 확 열고 나가려는 안정수의 눈에는 김우영 부장이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그녀의 팔을 억지로 떼어내는 모습을 보곤 멈칫했다.
‘스, 스스로?’
안정수는 자유로워진 아내의 입에서 앙칼진 비명이 터져 나올 줄 알았는데, 미묘하게 새어나오는 건 쾌락을 품은 억눌린 신음소리였다. 곧이어 불이 나가며 어둠에 휩싸인 현관문은 김우영 부장의 거친 숨소리와 자유로워진 아내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억눌린 달콤한 신음소리가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했다.
‘대, 대체 언제? 아니 왜……?’
안정수는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움직임과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달콤한 신음을 들으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설마 하던 의혹이 눈앞에 현실로 드러나자 안정수는 벌어진 문틈 사이로 굳은 채 전신의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곧이어 불이 들어오자 한층 쾌락에 달아오른 아내의 얼굴에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고민어린 그녀의 표정에 안정수는 살짝 기대감을 품어본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을 산산이 부셔버리는 것이 안정수의 눈에 들어왔다.
김우영 부장이 아내를 짓누르기 위해 상체를 내리며 서로의 하체가 더욱 밀착했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내의 다리가 뻣뻣하게 하늘로 쳐올려져 쾌락에 경련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절대로 억지로 범해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해준다.
안정수를 놀리듯 또다시 어둠속에 숨은 두 사람의 모습. 미약하게나마 계속해서 터져 나오던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돌연 안 들린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둔탁한 소음만이 계속해서 어둠속에서 울려 퍼지자 초조해진 안정수였지만 그런 안정수에게 보조등은 현실을 들이민다.
‘……?!’
밝아진 현관문에는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얼핏 봐도 놀란 김우영 부장의 표정과 고개를 내민 아내의 모습에서 추측하건데 아내가 스스로 키스를 한 것이다. 그러자 김우영 부장은 눈웃음치며 아내를 짓눌러버릴 듯 껴안더니 한층 강해진 허리 놀림으로 아내를 더욱 강하게 찍어 내리기 시작한다.
현관문에서 관계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격렬한 소음과 환희어린 억눌린 신음소리, 훅훅 뿜어져 나오는 뜨겁고 야릇한 공기는 이젠 안방 안까지 새어 들어오며 안정수를 휘감는다. 켜졌다, 꺼지길 반복하는 보조등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정수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한 가지 의문만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왜?’
자신이 아내에게 준 사랑이 부족했을까? 왜 상대가 김우영 부장일까?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왜 자신에겐 그렇게 사랑스럽게 안 안길까? 같은 모든 의문이 드문드문 머릿속을 휘저으며 지나간다.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타격음에 맞춰 자신의 가슴도 격렬하게 뛰며 피를 돌게 한다. 불이 켜질 때마다 그 자존심 강하고 자기관리 철저해 남은커녕 남편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여인이 쾌락에 미쳐가며, 더럽혀져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잔뜩 술에 취한 아내를 골탕 먹이기 위해 대리기사에게 장난치게 한 그 때를…….
“응……?”
안정수는 빠르고,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몸을 느낀다. 더욱이 하반신 쪽으로 몰리는 피에 안정수는 의아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부푼 자신의 팬티 앞섬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왜지?’
쿵쿵 뛰는 가슴과 미칠 듯이 자신의 몸을 휘젓고 다니는 뜨거운 기운은 정체가 무엇일까?
분노일까? 아내에 대한 분노? 자신의 대한 분노? 김우영 부장에 대한 분노?
배덕감일까? 아내가 다른 이에게 더럽혀진다는 배덕감? 그것도 자신의 상사에게 짓눌려져 있는 저 모습에 대한?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계속해서 바라보던 안정수는 곧이어 이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질투다.
자신의 품에서 아끼고, 사랑하던 소중한 보물이 외간 놈에게 채여가 그 더러운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사소하지만 더 할 나위 없이 분한 감각.
안정수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감각을 자각한 순간 두 사람은 절정에 오르며 상념에 빠진 안정수를 단번에 현실로 되돌릴 만큼 커다랗고 둔탁한 찰진 소리와 환희의 비명을 지르는 아내가 그런 쾌락을 준 상대의 머리를 껴안고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안정수의 눈에 새겨진다.
하늘높이 쳐들린 아내의 다리가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신발장 밑으로 숨는 걸 끝으로 보조등의 불빛이 나간다.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뜨거움이 절절이 전해지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들려올 리 없는 제 3자인 안정수의 질투어린 숨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에 휩싸여있던 현관문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자 보조등의 불빛이 환하게 들어오며 또다시 두 사람을 비춘다. 아내의 몸에서 떨어진 김우영 부장은 만족스럽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불빛 아래 드러난 아내의 몸을 찬찬히 뜯어본다. 질척한 욕망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시선은 아내의 몸을 끈적하게 탐닉한다. 곧이어 바지를 주섬주섬 입는 소리가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들려온다.
아내는 그런 시선과 보조등의 강렬한 불빛이 부끄럽기라도 한 것일까?
얼굴을 팔로 가린 채 달아오르고 만족한 유부녀의 여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불빛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아내의 아름다운 몸은 김우영 부장이 흘린 땀과 그녀가 흘린 땀으로 번들거리며 타액으로 더럽혀진 모습이 안정수의 가슴을 옥죄면서도 크게 뛰게 한다. 아내가 이따금 경련하듯 크게 허리를 움찔거릴 때마다 김우영 부장의 시선은 신발장 때문에 보이지 않는 아내의 하체를 능글맞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
안정수는 단번에 깨달았다. 지금 아내는 김우영 부장의 질척하고 끈적한 그 욕망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낸 게 틀림없다고. 그리고 지금 그 흘러넘친 욕망을 이따금 토해내는 그 치욕과 쾌락에 버무려진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자신은 이상한 걸까?
곧이어 김우영 부장이 스마트폰을 꺼내 그런 아내의 모습을 이리저리 찍곤 현관문을 열곤 나가버린다. 환한 보조등 아래 얼굴을 가린 채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있는 그녀는 그저 묵묵히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 아내의 잔뜩 흐트러진 모습을 안정수도 아무런 질투의 불꽃이 일고 있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보조등의 불빛이 나가고, 소름끼치는 정적과 고요함이 집안에 들이닥치자 안정수는 조용히 안방 문을 닫으며 부푼 자신의 앞섬을 내버려둔 채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타들어가는 갈증과 미칠 듯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 가지 감정에 몸을 불태웠다.
‘그녀는 내꺼야!’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안정수의 질투어린 안광은 그 기세가 남달랐다.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온 몸을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안정수는 막 씻고 나온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화창한 아침햇살 속 자신과 눈이 맞은 아내는 사랑스런 미소를 보내온다.
“어제 왜 그렇게 과음했어. 몸은 괜찮아?”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으며, 목욕 수건으로 꽁꽁 감싼 아내의 몸에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어젯밤의 일은 자신의 꿈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수많은 감정과 하룻밤의 불장난의 감각이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게 느껴진다.
‘김우영 부장 설마 이것 때문에?’
묘하게 자신의 주위를 맴돌던 김우영 부장이었다. 물론 그의 꾐에 넘어가 불장난을 한 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보고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아내의 태도에 안정수는 일단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단은 정보야.’
안정수는 속옷이 가득한 서랍을 열며 입을 속옷을 고민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가슴을 짓누르고 자초지종부터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과 같이 하룻밤의 불장난이라고 하기엔 아내의 환희어린 모습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만약……만약 아내가 원해서 그런 거라면…….’
안정수는 가슴 한 편이 서늘해지려는 걸 참고 아내의 매끄러운 등을 바라보고 있다. 서랍 가득히 들어찬 아내의 속옷.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정장만을 고집하는 그녀로써는 아무래도 순백의 속옷이나 색이 강렬하지 않은 속옷을 선호한다. 그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아내도 여자라고 주장하듯 같은 색깔의 속옷이라 하더라도 귀여운 프릴 달린 속옷이나 고급스런 자수가 들어간 속옷, 하얗지만 망사로 되어있어 묘하게 섹시한 속옷 등 굉장히 많은 속옷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렇기에 안정수는 아내가 손에 집어든 속옷에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어?”
하얗고, 색이 강하지 않은 속옷들로 가득하기에 더욱 눈에 띄는 속옷들이 있다. 자신과 연예하며 입었던 강렬하고 섹시한 계열의 검정이나 붉은색 계열의 속옷. 사회생활하며 입긴 힘들어도 귀엽다며 사 모은 그런 속옷들 중 하나가 아내의 손에 들려있었다.
오늘도 출근해야 할 아내가 절대 입을 리 없는 그런 속옷.
팬티는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의 망사로 되어있어 속살이 들여다보이며, 앞부분은 아내의 취향에 맞게 귀엽지만 강렬한 붉은 색 프릴이 달려있어 묘하게 앞부분을 가려 그 속을 궁금케 하고, 앞과는 전혀 반대로 엉덩이 부분은 완전히 망사로 되어 있어 그 탐스런 엉덩이와 그 골마저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디자인이다. 팬티와 세트라고 주장하는 브래지어는 가슴부분이 완전히 망사로 되어있고, 팬티와 같은 디자인의 붉은 프릴이 묘하게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탐스런 과실의 꼭지부분을 가려 이마저도 그 속을 궁금케 하는 디자인이다.
“…….”
손에 쥔 강렬하고 섹시한 속옷을 내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은 어쩐지 살짝 멍한 모습이다. 곧이어 무언가 화들짝 놀라며 그 속옷을 다시 서랍 안에 쑤셔 넣곤 평소와 같이 순백의 속옷을 입곤 아침을 차린다.
안정수는 평소 신경 쓰지도 않던 아내의 그런 작은 변화를 놓칠세라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
어영부영 화해한 것처럼 된 부부의 아침식사 시간은 어색하면서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평**면 아내의 그런 어색해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에 미소 지을 그였지만 어쩐지 아내가 애처로워 보이는 건 자신이 이상한 걸까?
‘바람피우는 게 미안한 걸까?’
김우영 부장의 품에 안겨 결국 절정에 달하면서도 여자로써 만족해버린 아내의 모습과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이 상반되자 안정수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미 출근을 끝마친 안정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도는 아내에 대한 생각에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게다가 이 고민의 다른 주인공은 이미 도망갔고 말이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외근 나간다는 말을 끝으로 회사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김우영 부장. 당최 얼굴보기가 힘드니 그를 살펴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도 바람을 피웠으니 할 말은 없군.’
하룻밤의 실수. 아내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시작된 불장난이 주는 죄책감에 안정수는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가슴에 품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른 부서와는 달리 부장이라는 작자가 매일같이 자리를 비우다보니 퇴근에 대한 눈치를 볼 리 없는 직원들은 퇴근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음에도 벌써 퇴근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안정수는 심란한 마음이 몸에도 영향을 줬는지, 일처리 속도가 늦어 오늘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이 일을 끝내려면 조금 더 회사에 남아있어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참 여러 가지로 도와주지 않는 세상살이다. 안정수는 초조함이 몸을 휘감는 걸 느끼며, 한숨을 푹 쉬곤 일에 전념하려는데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퇴근 준비하나보지?”
외근 나갔던 김우영 부장이 퇴근 하려는 직원들에게 끌끌 웃음을 날리며 회사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도 상사라고 퇴근 준비하던 직원들은 김우영 부장이 돌아오자 눈에 띄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그런 직원들을 둘러보던 김우영 부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손을 휙휙 젓는다.
“신경 쓰지 말고 퇴근들 해. 언제는 내 눈치보고 했나? 일만 잘하면 되지.”
그런 김우영 부장의 행동에 직원들은 하나, 둘 눈치 보며 퇴근시간이 되자 슬금슬금 퇴근을 시작한다. 김우영 부장은 퇴근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계속 일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더 회사에 남아있을 모양이다.
‘오늘은 아내를 안 만나나? 아니면 정말 그냥 하룻밤의 불장난?’
그 콧대 높은 아내는 의외로 몸이 민감하다. 잠자리에서 한 번 불붙으면 서로 격렬한 사랑을 나누지만 외간 남자와 하룻밤의 불장난을 하며 그 정도로 환희에 몸부림 칠 정도는 아니다. 분명 한, 두 번 배를 맞댄 게 아닌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잘됐군. 어차피 나도 남아서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안정수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을 살피며 계속해서 일을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직원들이 거의 빠져나간 사무실에는 아까와 같은 활기는 없다. 김우영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하려는 걸 곁눈질로 살핀다. 그런 자신과 눈이 마주친 김우영 부장은 퇴근 안하냐는 통상적인 물음에 자신도 일이 남았다고 통상적인 답변을 해준다.
“고생이 많아~저녁은? 오늘도 한 잔 꺾을 텐가?”
“말씀은 고맙지만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돼서요.”
“흠. 아쉽구만. 다음에 또 자리 가지자고.”
“네. 꼭.”
심지가 있는 안정수의 말을 깨닫지 못 한 건지, 김우영 부장은 그저 어젯밤의 불장난을 떠올리는 건지, 자신의 아내와의 불장난을 떠올리는 건지 모를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안정수는 화장실로 향하는 김우영 부장을 눈으로 쫓으며 그와 아내에 대한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선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걸 자신에게 세뇌하듯 타이른다.
‘당신에겐 못 줘.’
텅 빈 김우영 부장의 자리를 바라보는 안정수의 눈에는 기광이 스쳐지나간다. 사무실에 남아있던 몇 안 되던 직원들도 김우영 부장이 화장실로 가버리자 때는 이때다 하고 순식간에 퇴근해 버린다. 안정수도 이 틈을 타 얼른 일을 끝마치기 위해 서두른다.
조용한 사무실엔 안정수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빨리 일을 끝마쳐야 한다는 일념 하에 굉장한 집중력을 보이던 안정수는 문득 시간이 꽤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시계를 보니 약 30~40분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달은 안정수는 의아함이 떠오른다.
‘오래 걸리네.’
물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평**면 그가 몇 시간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든 신경 쓸 일도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게 의심스럽다. 안정수는 자신도 화장실에 갈 겸 자리에서 일어선다. 직원들이 다 퇴근해 버린 조용한 복도를 천천히 걷는다. 곧이어 화장실에 눈에 들어오고 안정수는 화장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선다.
“……없네?”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화장실 안에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잠시 사람 만나러 나갔을 거란 생각에 안정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볼일을 본다.
‘설마 아내를 만나러 나간건가?’
모든 게 아내로 귀결되는 자신의 의심어린 생각에 안정수는 한숨을 푹 쉬며 볼일을 끝내고 바지를 추켜올리는 순간 자신의 등 뒤에서 힘주는 남자의 억눌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고요했던 화장실이었는데 왜 이제 와서? 이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자신이 들어왔을 때부터 소리의 주인공이 이미 안에 있었다는 게 된다.
안정수는 소리 난 자신의 등 뒤에 보이는 굳게 닫힌 화장실 문들을 바라본다. 당연히 큰일을 보기 위해선 자연히 소리가 새어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마치 죽은 듯이 조용했던 화장실인데 이제 와서 소리가 나온 것에 안정수는 눈이 가늘어지며 잠시 기다린다.
“후우~”
시원함이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락거리는 옷이 스치는 소리와 철컥, 철컥하는 벨트 잠그는 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딸깍하는 잠금 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불쑥 사람이 튀어나온다.
“응? 자네도 화장실인가?”
아니나 다를까? 안에서 나온 사람은 김우영 부장이었다. 평소처럼 그저 통상적인 안부나 묻는 자연스런 얼굴과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 탁하고 닫히는 화장실의 문틈은 절묘하게 김우영 부장의 몸이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예. 그러는 부장님은 꽤 오래 걸리셨네요.”
“하하하! 이 사람이. 그런 걸 묻는 건 실례네. 아무래도 슬슬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말이야.”
자연스레 웃어재끼며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이 마치 화장실 안이 의심스러우면 확인해보라고 도발하는 것 같다.
‘신경과민인가?’
기껏해야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의 당당한 모습도 의심이라는 걸 지우고 바라보면 화장실에서 취하는 당연한 모습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끝마쳤으면 당연히 손을 씻는 건 당연하고, 마주치면 멋쩍어서라도 통상적인 말을 건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 먼저 나가네.”
심지어 김우영 부장은 손을 다 씻곤 화장실을 나가버린다. 안정수는 그 자리에 잠시 서서 그가 나온 화장실 문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 문 앞으로 걸음을 옮긴 안정수는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밀기만 해도 이런 의심은 쉽게 풀릴 텐데.’
자신이 품고 있는 의심은 이 문을 밀기만 해도 쉽게 풀릴 것이다. 문제는 그 안에 있는 게 문제다. 만약 안에 아내가 없다면 앞으로 계속 이런 의심암귀에 걸려 그와 아내의 사이를 알아보는 것도,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도 힘들지도 모른다.
‘그냥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인가?’
안정수는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안에 아내가 있다면 그거야 말로 더욱 어떻게 해야 할이지 갈피가 안 잡힌다. 만약 아내가 정말 원해서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거라면? 자신은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에 정리를 끝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안정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린다. 강제적으로 이뤄진 관계라면?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안정수는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고민에 빠진다. 화장실 문 너머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안에 만약 아내가…….
“…….”
안정수는 가슴이 다시 한 번 크게 뛰는 걸 느끼며 눈을 꼭 감는다. 문 너머 자신의 사랑스런 아내가 그 도도하고 콧대 높은 자존심 덩어리의 여왕님이 여자라면 환장하는 중년 남자에게 깔려 더럽혀져 있을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다.
“꿀꺽…….”
안정수는 얇디얇은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차가운 화장실에서 안정수는 타들어가는 목구멍에 마른 침을 삼킨 뒤 화장실 문에서 손을 뗀다.
‘확실하게 알아보자. 원해서 이뤄진 관계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다고 해도 자신이 상처 입는 게 두려울 뿐이다. 아직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안정수는 터질 것 같은 질투심을 가슴에 품고 그 안에서 작게 피어난 배덕감을 애써 외면한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를 상처 입혀도 더럽혀도 되는 건 오로지 나뿐이야.’
자신의 몸을 휘젓고 다니는 뜨거운 질투심과 대리기사에게 취한 아내를 희롱하게 했을 때의 묘하게 끓어오르는 가슴 속 배덕감을 또다시 느끼며 안정수는 화장실을 나섰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안정수의 모습에선 남자다운 기세가 뿜어져 나온다. 덜렁거리고 자존심 강한 아내를 배려하느라 유해진 그의 성격은 본래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때로…….
“흐음…….”
멀어져가는 안정수를 숨어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곤란한 목소리를 낸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사람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영업부 사무실과는 정 반대편에 숨어있던 김우영은 화장실을 나서는 안정수의 모습에서 그가 드디어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걸 깨달았다.
“이거 암고양이의 남편도 고양이인줄 알았더니…….”
김우영은 곤란한 듯 말하면서도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떠오른다. 김우영은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던 손에서 무언가를 움켜쥐곤 꺼내든다. 손에 쥔 무언가를 펼쳐들며 그 안에 잔뜩 배인 체취를 탐닉하듯 들이마신다.
“하지만 말이지……끌끌끌.”
김우영의 손에 움켜쥔 것은 여성용 팬티였다. 이미 누군가가 입었다는 걸 증명하듯 그 팬티에선 진한 여인의 체취가 배어들어 있었으며, 그녀 특유의 체취 속에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는 질척한 액체는 팬티에 잔뜩 스며들어 야릇한 향기를 풍기며 김우영의 손아귀에서 지금도 질척거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의 망사로 되어 있으며 귀여운 붉은 색 프릴이 달려 강렬하면서도 섹시한 팬티는 야릇한 향기까지 더해져 더 할 나위 없이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두 남자가 떠난 화장실.
화장실 내에는 환기를 위해 작은 창문이 달려있다. 방금 김우영과 안정수가 사용한 회사 내 화장실에도 당연히 작은 창문이 달려있는데,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창문에서 새어 들어온 깨끗한 공기는 화장실 안의 찌든 냄새를 빼내자 그 사이를 채우듯 어떠한 향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그 어떠한 향기는 김우영이 나온 화장실 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큰일을 봤다는 김우영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물을 내리지 않았다면 고약한 냄새가 나야 할 화장실 칸 안에선 전혀 다른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 향기는 남자 화장실에서 날 리 없는 수컷을 자극하는 야릇한 체취와 비릿한 밤꽃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야릇한 향기는 김우영이 손에 쥐고 있는 팬티와 똑같은 냄새를 품고 있었는데, 그가 나갔음에도 더욱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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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썼더니 횡설수설 정신이 없는 글이네요. 생각이란 걸 글로 표현하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네토라레 장르면서도 삼천포로 빠지는 게 아닌가란 걱정어린 말씀도 많이 들려오는데, 일단 본래 생각했던 스토리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독자분들의 좋은 의견은 스토리에 영향이 없는 한 추가해도 되겠다라고 생각이 들면 집어넣고 있죠.
다음주는 개인적 사정 때문에 이번주 주말부터 바쁠 예정이라 부랴부랴 횡설수설 이상한 글 올리고 사라집니다. 혹여 이상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고 추후 수정이 있다면 다음 글에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는 아마 다음주 주말이나 주말을 살짝 넘어야 올라올 것 같습니다 ㅜㅜ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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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흠.”
목이 타는 듯 괴로움이 섞인 목소리가 안방을 울린다. 이에 호응하듯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깨어나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잦아진다. 곧이어 짙은 어둠이 깔린 안방에는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리며 침대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앉는다.
“……물.”
갈라진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안방 침대의 주인 중 하나인 안정수다. 과음 때문일까? 아니면 격렬했던 불장난 때문일까?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자의반 타의반 잠에서 깨어났다.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한동안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던 안정수는 그제야 이곳이 자신의 집이란 걸 깨달았다.
‘몇 시지?’
어둠이 짙게 깔린 걸로 봐선 아직 한밤중이란 걸 알 수 있게 해주지만, 안정수는 곧이어 한 가지 사실에 지금 시간에 대한 확실을 잃어버렸다.
‘이 시간에 아내는?’
술에 취한 자신을 데려다 준 건 김우영 부장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이 침대까지 옮긴 건 필시 아내가 틀림없을 텐데 보이질 않는다.
‘……자정은 훨씬 넘은 시간이 확실한데?’
정확한 시간은 몰라도 날짜가 바뀌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게 시간에 대한 의문이 계속될 줄 알았던 그의 사고는 안방 문 밖에서 들려오는 털썩하는 무언가가 넘어지는 소리에 상념이 멈췄다.
‘무슨 소리지?’
어차피 물을 마시려면 마루로 나가야 하기에 안정수는 두통이 밀려오는 머리를 붙잡고, 힘겹게 안방 문고리에 손을 올린다. 누구나 의식하지 않고도 문을 열 때는 자신이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열어 재끼지만 과음과 격렬한 불장난으로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깨질 것 같은 두통에 안정수는 안방 문을 열다말고 문고리를 잡은 채 밀려오는 두통에 잠시 괴로워 하는 사이 퍽 하는 둔탁하고 찰진 소리가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
잘못들은 건가 싶었지만 곧이어 그 둔탁한 타격음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자신의 귓가에 울린다. 안정수는 의아함을 느끼며 그 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문을 더욱 열려는 순간 그 소리가 묘하게 낯이 익다고 생각하고 벌어진 문틈 사이로 집안을 살펴본다. 마루에는 형광등 대신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보조등이 들어와 있고, 소리의 진원지는 마루보다 더욱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걸 확인하고 시선을 던진 순간 안정수는 얼어붙었다.
‘나, 나은이?’
현관문에 쓰러져있는 아내는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고 있고, 자신의 입을 필사적으로 틀어막아 새어나오려는 소리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순간 현관문에 달린 보조등이 훅 나가며 정적에 휩싸이자, 어둠 속에서 깊으면서도 쾌락이 절절이 묻어나는 남성의 거친 숨소리와 둔탁한 타격음이 안정수의 귀를 파고들고, 어둠에 적응되지 않는 안정수의 눈은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출렁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도, 도둑?!’
지금은 어둠에 휩싸였지만 잠시 보였던 현관문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묘하게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던 아내의 하반신과 이 거친 숨결의 주인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안정수가 패닉에 빠지려는 그 찰나 보조등의 불빛이 확 들어오며, 아내의 모습을 다시금 비춘다.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은 아내의 하반신에서 전해지는 강한 힘에 아름답게 출렁이고 있었으며, 때때로 반짝이는 물방울이 젖가슴에서 튀어 오르는 것이 보조등 불빛 아래에서 빛난다. 미묘하게 새어나오는 달콤한 아내의 신음소리와 몽롱하게 풀린 아내의 눈빛. 점점 집안을 채우기 시작한 야릇하고 뜨거운 공기를 느끼며 안정수는 당황한다.
‘……어?’
지금 아내의 하반신에서 연신 강한 힘으로 허리를 놀리고 있을 상대가 흉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기가 쎈 아내가 소리 한 번 못 지를 정도로? 게다가 묘하게 달아오른 아내의 표정을 본 안정수는 결국 패닉에 빠졌다. 안정수가 패닉에 빠지건 말건 현관문에서 연신 거친 숨결을 토해내던 남성이 신발장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아내를 짓누른다.
“헉?!”
안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지만 두 사람에겐 들리지 않았나보다. 안정수는 아내 위에 올라타 짓누르며 연신 허리를 내려찍으며 그 둔탁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남자를 알고 있다. 바로 자신의 상사 김우영 부장이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김우영 부장이 여성편력이 심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부하직원의 아내를 강제로 범할 줄은 몰랐다. 문을 확 열고 나가려는 안정수의 눈에는 김우영 부장이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그녀의 팔을 억지로 떼어내는 모습을 보곤 멈칫했다.
‘스, 스스로?’
안정수는 자유로워진 아내의 입에서 앙칼진 비명이 터져 나올 줄 알았는데, 미묘하게 새어나오는 건 쾌락을 품은 억눌린 신음소리였다. 곧이어 불이 나가며 어둠에 휩싸인 현관문은 김우영 부장의 거친 숨소리와 자유로워진 아내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억눌린 달콤한 신음소리가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했다.
‘대, 대체 언제? 아니 왜……?’
안정수는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움직임과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달콤한 신음을 들으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설마 하던 의혹이 눈앞에 현실로 드러나자 안정수는 벌어진 문틈 사이로 굳은 채 전신의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곧이어 불이 들어오자 한층 쾌락에 달아오른 아내의 얼굴에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고민어린 그녀의 표정에 안정수는 살짝 기대감을 품어본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을 산산이 부셔버리는 것이 안정수의 눈에 들어왔다.
김우영 부장이 아내를 짓누르기 위해 상체를 내리며 서로의 하체가 더욱 밀착했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내의 다리가 뻣뻣하게 하늘로 쳐올려져 쾌락에 경련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절대로 억지로 범해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해준다.
안정수를 놀리듯 또다시 어둠속에 숨은 두 사람의 모습. 미약하게나마 계속해서 터져 나오던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돌연 안 들린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둔탁한 소음만이 계속해서 어둠속에서 울려 퍼지자 초조해진 안정수였지만 그런 안정수에게 보조등은 현실을 들이민다.
‘……?!’
밝아진 현관문에는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얼핏 봐도 놀란 김우영 부장의 표정과 고개를 내민 아내의 모습에서 추측하건데 아내가 스스로 키스를 한 것이다. 그러자 김우영 부장은 눈웃음치며 아내를 짓눌러버릴 듯 껴안더니 한층 강해진 허리 놀림으로 아내를 더욱 강하게 찍어 내리기 시작한다.
현관문에서 관계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격렬한 소음과 환희어린 억눌린 신음소리, 훅훅 뿜어져 나오는 뜨겁고 야릇한 공기는 이젠 안방 안까지 새어 들어오며 안정수를 휘감는다. 켜졌다, 꺼지길 반복하는 보조등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정수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한 가지 의문만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왜?’
자신이 아내에게 준 사랑이 부족했을까? 왜 상대가 김우영 부장일까?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왜 자신에겐 그렇게 사랑스럽게 안 안길까? 같은 모든 의문이 드문드문 머릿속을 휘저으며 지나간다.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타격음에 맞춰 자신의 가슴도 격렬하게 뛰며 피를 돌게 한다. 불이 켜질 때마다 그 자존심 강하고 자기관리 철저해 남은커녕 남편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여인이 쾌락에 미쳐가며, 더럽혀져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잔뜩 술에 취한 아내를 골탕 먹이기 위해 대리기사에게 장난치게 한 그 때를…….
“응……?”
안정수는 빠르고,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몸을 느낀다. 더욱이 하반신 쪽으로 몰리는 피에 안정수는 의아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부푼 자신의 팬티 앞섬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왜지?’
쿵쿵 뛰는 가슴과 미칠 듯이 자신의 몸을 휘젓고 다니는 뜨거운 기운은 정체가 무엇일까?
분노일까? 아내에 대한 분노? 자신의 대한 분노? 김우영 부장에 대한 분노?
배덕감일까? 아내가 다른 이에게 더럽혀진다는 배덕감? 그것도 자신의 상사에게 짓눌려져 있는 저 모습에 대한?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계속해서 바라보던 안정수는 곧이어 이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질투다.
자신의 품에서 아끼고, 사랑하던 소중한 보물이 외간 놈에게 채여가 그 더러운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사소하지만 더 할 나위 없이 분한 감각.
안정수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감각을 자각한 순간 두 사람은 절정에 오르며 상념에 빠진 안정수를 단번에 현실로 되돌릴 만큼 커다랗고 둔탁한 찰진 소리와 환희의 비명을 지르는 아내가 그런 쾌락을 준 상대의 머리를 껴안고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안정수의 눈에 새겨진다.
하늘높이 쳐들린 아내의 다리가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신발장 밑으로 숨는 걸 끝으로 보조등의 불빛이 나간다.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뜨거움이 절절이 전해지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들려올 리 없는 제 3자인 안정수의 질투어린 숨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에 휩싸여있던 현관문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자 보조등의 불빛이 환하게 들어오며 또다시 두 사람을 비춘다. 아내의 몸에서 떨어진 김우영 부장은 만족스럽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불빛 아래 드러난 아내의 몸을 찬찬히 뜯어본다. 질척한 욕망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시선은 아내의 몸을 끈적하게 탐닉한다. 곧이어 바지를 주섬주섬 입는 소리가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들려온다.
아내는 그런 시선과 보조등의 강렬한 불빛이 부끄럽기라도 한 것일까?
얼굴을 팔로 가린 채 달아오르고 만족한 유부녀의 여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불빛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아내의 아름다운 몸은 김우영 부장이 흘린 땀과 그녀가 흘린 땀으로 번들거리며 타액으로 더럽혀진 모습이 안정수의 가슴을 옥죄면서도 크게 뛰게 한다. 아내가 이따금 경련하듯 크게 허리를 움찔거릴 때마다 김우영 부장의 시선은 신발장 때문에 보이지 않는 아내의 하체를 능글맞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
안정수는 단번에 깨달았다. 지금 아내는 김우영 부장의 질척하고 끈적한 그 욕망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낸 게 틀림없다고. 그리고 지금 그 흘러넘친 욕망을 이따금 토해내는 그 치욕과 쾌락에 버무려진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자신은 이상한 걸까?
곧이어 김우영 부장이 스마트폰을 꺼내 그런 아내의 모습을 이리저리 찍곤 현관문을 열곤 나가버린다. 환한 보조등 아래 얼굴을 가린 채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있는 그녀는 그저 묵묵히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 아내의 잔뜩 흐트러진 모습을 안정수도 아무런 질투의 불꽃이 일고 있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보조등의 불빛이 나가고, 소름끼치는 정적과 고요함이 집안에 들이닥치자 안정수는 조용히 안방 문을 닫으며 부푼 자신의 앞섬을 내버려둔 채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타들어가는 갈증과 미칠 듯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 가지 감정에 몸을 불태웠다.
‘그녀는 내꺼야!’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안정수의 질투어린 안광은 그 기세가 남달랐다.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온 몸을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안정수는 막 씻고 나온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화창한 아침햇살 속 자신과 눈이 맞은 아내는 사랑스런 미소를 보내온다.
“어제 왜 그렇게 과음했어. 몸은 괜찮아?”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으며, 목욕 수건으로 꽁꽁 감싼 아내의 몸에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어젯밤의 일은 자신의 꿈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수많은 감정과 하룻밤의 불장난의 감각이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게 느껴진다.
‘김우영 부장 설마 이것 때문에?’
묘하게 자신의 주위를 맴돌던 김우영 부장이었다. 물론 그의 꾐에 넘어가 불장난을 한 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보고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아내의 태도에 안정수는 일단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단은 정보야.’
안정수는 속옷이 가득한 서랍을 열며 입을 속옷을 고민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가슴을 짓누르고 자초지종부터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과 같이 하룻밤의 불장난이라고 하기엔 아내의 환희어린 모습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만약……만약 아내가 원해서 그런 거라면…….’
안정수는 가슴 한 편이 서늘해지려는 걸 참고 아내의 매끄러운 등을 바라보고 있다. 서랍 가득히 들어찬 아내의 속옷.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정장만을 고집하는 그녀로써는 아무래도 순백의 속옷이나 색이 강렬하지 않은 속옷을 선호한다. 그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아내도 여자라고 주장하듯 같은 색깔의 속옷이라 하더라도 귀여운 프릴 달린 속옷이나 고급스런 자수가 들어간 속옷, 하얗지만 망사로 되어있어 묘하게 섹시한 속옷 등 굉장히 많은 속옷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렇기에 안정수는 아내가 손에 집어든 속옷에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어?”
하얗고, 색이 강하지 않은 속옷들로 가득하기에 더욱 눈에 띄는 속옷들이 있다. 자신과 연예하며 입었던 강렬하고 섹시한 계열의 검정이나 붉은색 계열의 속옷. 사회생활하며 입긴 힘들어도 귀엽다며 사 모은 그런 속옷들 중 하나가 아내의 손에 들려있었다.
오늘도 출근해야 할 아내가 절대 입을 리 없는 그런 속옷.
팬티는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의 망사로 되어있어 속살이 들여다보이며, 앞부분은 아내의 취향에 맞게 귀엽지만 강렬한 붉은 색 프릴이 달려있어 묘하게 앞부분을 가려 그 속을 궁금케 하고, 앞과는 전혀 반대로 엉덩이 부분은 완전히 망사로 되어 있어 그 탐스런 엉덩이와 그 골마저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디자인이다. 팬티와 세트라고 주장하는 브래지어는 가슴부분이 완전히 망사로 되어있고, 팬티와 같은 디자인의 붉은 프릴이 묘하게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탐스런 과실의 꼭지부분을 가려 이마저도 그 속을 궁금케 하는 디자인이다.
“…….”
손에 쥔 강렬하고 섹시한 속옷을 내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은 어쩐지 살짝 멍한 모습이다. 곧이어 무언가 화들짝 놀라며 그 속옷을 다시 서랍 안에 쑤셔 넣곤 평소와 같이 순백의 속옷을 입곤 아침을 차린다.
안정수는 평소 신경 쓰지도 않던 아내의 그런 작은 변화를 놓칠세라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
어영부영 화해한 것처럼 된 부부의 아침식사 시간은 어색하면서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평**면 아내의 그런 어색해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에 미소 지을 그였지만 어쩐지 아내가 애처로워 보이는 건 자신이 이상한 걸까?
‘바람피우는 게 미안한 걸까?’
김우영 부장의 품에 안겨 결국 절정에 달하면서도 여자로써 만족해버린 아내의 모습과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이 상반되자 안정수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미 출근을 끝마친 안정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도는 아내에 대한 생각에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게다가 이 고민의 다른 주인공은 이미 도망갔고 말이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외근 나간다는 말을 끝으로 회사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김우영 부장. 당최 얼굴보기가 힘드니 그를 살펴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도 바람을 피웠으니 할 말은 없군.’
하룻밤의 실수. 아내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시작된 불장난이 주는 죄책감에 안정수는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가슴에 품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른 부서와는 달리 부장이라는 작자가 매일같이 자리를 비우다보니 퇴근에 대한 눈치를 볼 리 없는 직원들은 퇴근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음에도 벌써 퇴근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안정수는 심란한 마음이 몸에도 영향을 줬는지, 일처리 속도가 늦어 오늘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이 일을 끝내려면 조금 더 회사에 남아있어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참 여러 가지로 도와주지 않는 세상살이다. 안정수는 초조함이 몸을 휘감는 걸 느끼며, 한숨을 푹 쉬곤 일에 전념하려는데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퇴근 준비하나보지?”
외근 나갔던 김우영 부장이 퇴근 하려는 직원들에게 끌끌 웃음을 날리며 회사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도 상사라고 퇴근 준비하던 직원들은 김우영 부장이 돌아오자 눈에 띄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그런 직원들을 둘러보던 김우영 부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손을 휙휙 젓는다.
“신경 쓰지 말고 퇴근들 해. 언제는 내 눈치보고 했나? 일만 잘하면 되지.”
그런 김우영 부장의 행동에 직원들은 하나, 둘 눈치 보며 퇴근시간이 되자 슬금슬금 퇴근을 시작한다. 김우영 부장은 퇴근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계속 일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더 회사에 남아있을 모양이다.
‘오늘은 아내를 안 만나나? 아니면 정말 그냥 하룻밤의 불장난?’
그 콧대 높은 아내는 의외로 몸이 민감하다. 잠자리에서 한 번 불붙으면 서로 격렬한 사랑을 나누지만 외간 남자와 하룻밤의 불장난을 하며 그 정도로 환희에 몸부림 칠 정도는 아니다. 분명 한, 두 번 배를 맞댄 게 아닌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잘됐군. 어차피 나도 남아서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안정수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을 살피며 계속해서 일을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직원들이 거의 빠져나간 사무실에는 아까와 같은 활기는 없다. 김우영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하려는 걸 곁눈질로 살핀다. 그런 자신과 눈이 마주친 김우영 부장은 퇴근 안하냐는 통상적인 물음에 자신도 일이 남았다고 통상적인 답변을 해준다.
“고생이 많아~저녁은? 오늘도 한 잔 꺾을 텐가?”
“말씀은 고맙지만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돼서요.”
“흠. 아쉽구만. 다음에 또 자리 가지자고.”
“네. 꼭.”
심지가 있는 안정수의 말을 깨닫지 못 한 건지, 김우영 부장은 그저 어젯밤의 불장난을 떠올리는 건지, 자신의 아내와의 불장난을 떠올리는 건지 모를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안정수는 화장실로 향하는 김우영 부장을 눈으로 쫓으며 그와 아내에 대한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선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걸 자신에게 세뇌하듯 타이른다.
‘당신에겐 못 줘.’
텅 빈 김우영 부장의 자리를 바라보는 안정수의 눈에는 기광이 스쳐지나간다. 사무실에 남아있던 몇 안 되던 직원들도 김우영 부장이 화장실로 가버리자 때는 이때다 하고 순식간에 퇴근해 버린다. 안정수도 이 틈을 타 얼른 일을 끝마치기 위해 서두른다.
조용한 사무실엔 안정수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빨리 일을 끝마쳐야 한다는 일념 하에 굉장한 집중력을 보이던 안정수는 문득 시간이 꽤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시계를 보니 약 30~40분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달은 안정수는 의아함이 떠오른다.
‘오래 걸리네.’
물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평**면 그가 몇 시간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든 신경 쓸 일도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게 의심스럽다. 안정수는 자신도 화장실에 갈 겸 자리에서 일어선다. 직원들이 다 퇴근해 버린 조용한 복도를 천천히 걷는다. 곧이어 화장실에 눈에 들어오고 안정수는 화장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선다.
“……없네?”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화장실 안에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잠시 사람 만나러 나갔을 거란 생각에 안정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볼일을 본다.
‘설마 아내를 만나러 나간건가?’
모든 게 아내로 귀결되는 자신의 의심어린 생각에 안정수는 한숨을 푹 쉬며 볼일을 끝내고 바지를 추켜올리는 순간 자신의 등 뒤에서 힘주는 남자의 억눌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고요했던 화장실이었는데 왜 이제 와서? 이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자신이 들어왔을 때부터 소리의 주인공이 이미 안에 있었다는 게 된다.
안정수는 소리 난 자신의 등 뒤에 보이는 굳게 닫힌 화장실 문들을 바라본다. 당연히 큰일을 보기 위해선 자연히 소리가 새어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마치 죽은 듯이 조용했던 화장실인데 이제 와서 소리가 나온 것에 안정수는 눈이 가늘어지며 잠시 기다린다.
“후우~”
시원함이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락거리는 옷이 스치는 소리와 철컥, 철컥하는 벨트 잠그는 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딸깍하는 잠금 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불쑥 사람이 튀어나온다.
“응? 자네도 화장실인가?”
아니나 다를까? 안에서 나온 사람은 김우영 부장이었다. 평소처럼 그저 통상적인 안부나 묻는 자연스런 얼굴과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 탁하고 닫히는 화장실의 문틈은 절묘하게 김우영 부장의 몸이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예. 그러는 부장님은 꽤 오래 걸리셨네요.”
“하하하! 이 사람이. 그런 걸 묻는 건 실례네. 아무래도 슬슬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말이야.”
자연스레 웃어재끼며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이 마치 화장실 안이 의심스러우면 확인해보라고 도발하는 것 같다.
‘신경과민인가?’
기껏해야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의 당당한 모습도 의심이라는 걸 지우고 바라보면 화장실에서 취하는 당연한 모습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끝마쳤으면 당연히 손을 씻는 건 당연하고, 마주치면 멋쩍어서라도 통상적인 말을 건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 먼저 나가네.”
심지어 김우영 부장은 손을 다 씻곤 화장실을 나가버린다. 안정수는 그 자리에 잠시 서서 그가 나온 화장실 문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 문 앞으로 걸음을 옮긴 안정수는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밀기만 해도 이런 의심은 쉽게 풀릴 텐데.’
자신이 품고 있는 의심은 이 문을 밀기만 해도 쉽게 풀릴 것이다. 문제는 그 안에 있는 게 문제다. 만약 안에 아내가 없다면 앞으로 계속 이런 의심암귀에 걸려 그와 아내의 사이를 알아보는 것도,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도 힘들지도 모른다.
‘그냥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인가?’
안정수는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안에 아내가 있다면 그거야 말로 더욱 어떻게 해야 할이지 갈피가 안 잡힌다. 만약 아내가 정말 원해서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거라면? 자신은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에 정리를 끝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안정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린다. 강제적으로 이뤄진 관계라면?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안정수는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고민에 빠진다. 화장실 문 너머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안에 만약 아내가…….
“…….”
안정수는 가슴이 다시 한 번 크게 뛰는 걸 느끼며 눈을 꼭 감는다. 문 너머 자신의 사랑스런 아내가 그 도도하고 콧대 높은 자존심 덩어리의 여왕님이 여자라면 환장하는 중년 남자에게 깔려 더럽혀져 있을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다.
“꿀꺽…….”
안정수는 얇디얇은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차가운 화장실에서 안정수는 타들어가는 목구멍에 마른 침을 삼킨 뒤 화장실 문에서 손을 뗀다.
‘확실하게 알아보자. 원해서 이뤄진 관계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다고 해도 자신이 상처 입는 게 두려울 뿐이다. 아직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안정수는 터질 것 같은 질투심을 가슴에 품고 그 안에서 작게 피어난 배덕감을 애써 외면한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를 상처 입혀도 더럽혀도 되는 건 오로지 나뿐이야.’
자신의 몸을 휘젓고 다니는 뜨거운 질투심과 대리기사에게 취한 아내를 희롱하게 했을 때의 묘하게 끓어오르는 가슴 속 배덕감을 또다시 느끼며 안정수는 화장실을 나섰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안정수의 모습에선 남자다운 기세가 뿜어져 나온다. 덜렁거리고 자존심 강한 아내를 배려하느라 유해진 그의 성격은 본래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때로…….
“흐음…….”
멀어져가는 안정수를 숨어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곤란한 목소리를 낸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사람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영업부 사무실과는 정 반대편에 숨어있던 김우영은 화장실을 나서는 안정수의 모습에서 그가 드디어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걸 깨달았다.
“이거 암고양이의 남편도 고양이인줄 알았더니…….”
김우영은 곤란한 듯 말하면서도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떠오른다. 김우영은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던 손에서 무언가를 움켜쥐곤 꺼내든다. 손에 쥔 무언가를 펼쳐들며 그 안에 잔뜩 배인 체취를 탐닉하듯 들이마신다.
“하지만 말이지……끌끌끌.”
김우영의 손에 움켜쥔 것은 여성용 팬티였다. 이미 누군가가 입었다는 걸 증명하듯 그 팬티에선 진한 여인의 체취가 배어들어 있었으며, 그녀 특유의 체취 속에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는 질척한 액체는 팬티에 잔뜩 스며들어 야릇한 향기를 풍기며 김우영의 손아귀에서 지금도 질척거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의 망사로 되어 있으며 귀여운 붉은 색 프릴이 달려 강렬하면서도 섹시한 팬티는 야릇한 향기까지 더해져 더 할 나위 없이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두 남자가 떠난 화장실.
화장실 내에는 환기를 위해 작은 창문이 달려있다. 방금 김우영과 안정수가 사용한 회사 내 화장실에도 당연히 작은 창문이 달려있는데,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창문에서 새어 들어온 깨끗한 공기는 화장실 안의 찌든 냄새를 빼내자 그 사이를 채우듯 어떠한 향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그 어떠한 향기는 김우영이 나온 화장실 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큰일을 봤다는 김우영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물을 내리지 않았다면 고약한 냄새가 나야 할 화장실 칸 안에선 전혀 다른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 향기는 남자 화장실에서 날 리 없는 수컷을 자극하는 야릇한 체취와 비릿한 밤꽃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야릇한 향기는 김우영이 손에 쥐고 있는 팬티와 똑같은 냄새를 품고 있었는데, 그가 나갔음에도 더욱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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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썼더니 횡설수설 정신이 없는 글이네요. 생각이란 걸 글로 표현하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네토라레 장르면서도 삼천포로 빠지는 게 아닌가란 걱정어린 말씀도 많이 들려오는데, 일단 본래 생각했던 스토리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독자분들의 좋은 의견은 스토리에 영향이 없는 한 추가해도 되겠다라고 생각이 들면 집어넣고 있죠.
다음주는 개인적 사정 때문에 이번주 주말부터 바쁠 예정이라 부랴부랴 횡설수설 이상한 글 올리고 사라집니다. 혹여 이상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고 추후 수정이 있다면 다음 글에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는 아마 다음주 주말이나 주말을 살짝 넘어야 올라올 것 같습니다 ㅜㅜ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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