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짓는 아내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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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 도시 서울.
주말이면 이 숨 막히는 곳에서 뛰쳐나가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이 종종 찾는 곳이 있다. 차를 타고 서울근교와 경기도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연산림장이나 작은 펜션들은 그런 지친 도시 현대인들을 상대로 장소를 제공해주는 곳이 많다.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말이 있듯 금요일 저녁이 되면 이런 펜션들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서울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한적한 마을의 이름도 없는 작은 뒷산에 지어진 펜션도 오늘은 만원사례를 맞이하고 있다.
주위에 마을이라고 해봐야 몇 가구 살지도 않고, 절경도 없고, 그저 적막함과 한적함만이 장점인 이 펜션. 서울에서 보기 힘든 드넓은 밤하늘과 조명대신 캠프파이어를 설치해 분위기를 잡았으며,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맛있는 바비큐, 신선한 음식들이 계속해서 제공되고 있어 지친 현대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생각보다 제대로인데?”
“……그러네.”
캐주얼한 복장의 안정수와 그의 아내 정나은도 그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있다. 이 펜션에 모인 사람들은 안정수에겐 매일같이 살을 비비고 사는 회사동료들이었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부부동반으로 이곳에 놀러왔다.
김우영 부장이 제안했던 부부동반인 내실다지기라는 명목하의 큰 회식이다.
지나가는 말투로 한 줄 알았던 부부동반의 회식은 김우영 부장의 적극적인 추진에 따라 그 규모가 커져 당일치기긴 해도 서울 근교의 펜션까지 빌려 이렇게 모인 것이다.
‘그나저나 통 크네…….’
지금 이 펜션을 빌린 것도, 음식을 내놓는 것도 전부 김우영 부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금요일 밤이라는 짧다면 짧고, 다음 날 쉬는 날이라는 점도 고려해 주도면밀하게 날짜까지 잡아 사원들이 도망 못 가게 계획을 잡은 것도 참 용하다.
‘그래도 여사원들은 도망갔지만.’
대부분 이 회식에 참여한 건 영업부 남성 사원들이다. 물론 부부동반이라는 점 때문에 남녀 비율이 안 맞는 건 아니지만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 여사원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졌다. 공짜 밥과 자연이 가득한 펜션에서 하룻밤이라는 좋은 미끼를 덥석 문 여사원도 몇몇 되지만…….
대부분 차를 끌고 와 술을 안 마실 줄 알았던 이 회식은 다음 날 오전 12시까지 이 펜션을 대실했다는 김우영 부장답지 않은 통 큼과 배려에 다들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다. 거기에 자지 않고 돌아갈 사람을 위해 펜션 측에서 대리기사도 준비해놨다고 하니 어찌 술을 안마시고 버티겠는가?
완전히 축제가 벌어졌다. 오랜만에 정말 회식다운 회식에 다들 졸라맸던 허리띠 풀고 먹고, 붓고 계급장 뗀 채 놀고 있다.
‘정작 당사자는 자리를 슬슬 피해준단 말이야?’
김우영 부장은 정말로 사원들을 편하게 즐기게 해주려고 배려를 한 것일까? 처음에만 부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덕담과 이런 저런 말을 한 뒤 잠깐, 잠깐씩 회식자리에 모습을 보여줄 뿐 어딘가에 처박혀서 모습조차 보여주질 않는다.
“아무렴 어때.”
안정수는 피식 웃곤 그저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도 다지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술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랑스런 아내까지 곁에 있으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런데 온 것도 오랜만이다. 그치?”
“응? 응. 그렇긴 하네.”
고기를 접시에 나눠담고 있던 아내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안정수는 알딸딸하게 들어간 술 때문에 더욱 아내가 예쁘게 보인다.
어스름한 어둠 속 캠프파이어 불빛에 보이는 아내는 자신처럼 편한 복장인데, 여전히 긴 생머리는 깔끔하게 틀어 올려 고정시켰고, 산속은 밤이 되면 추울까봐 입고 온 크림색 스웨터와 하얀색 스키니 진을 입었다. 직장 여성의 전유물인 하이힐도 벗어던지고 편안한 운동화까지 신으니 지적이고, 청순하기만 하던 아내가 20대 대학생처럼 쾌활한 분위기를 띈다.
‘내 아내지만 자기 관리는 참 잘해요.’
군살하나 없는 매끄러운 라인에 크림색 스웨터 위로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두 가슴과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 때문에 탄력적으로 툭 튀어나온 아내의 업 된 엉덩이는 때려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헤실헤실 징그럽게 웃는 안정수를 눈치 챈 걸까? 정나은은 고양이처럼 눈매가 올라가며 남편의 징그러운 시선을 털어내듯 몸을 휙 돌려버린다.
찰싹!
“꺅?!”
사람들의 시끌시끌한 웃음소리와 말소리 속에 찰진 소리와 함께 정나은의 귀여운 비명이 섞이더니 곧 흩어져 사라진다.
“이 사람이?!”
“하하하 우리 아내 엉덩이 참 예쁘네?”
고양이처럼 확 치켜 올라간 정나은의 눈매는 완전 무장상태다. 평**면 아내의 저런 날카로운 태도에 깨갱하며 꼬리를 말았겠지만 술만 들어가면 이상하리만치 대담해지는 그다. 그렇기에 그저 고양이처럼 날 선 아내의 모습에도 하하 웃을 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에 정나은은 피식 웃으며 한숨을 쉴 뿐이다.
‘하여간 이 사람은 평소에 그렇게 순댕이에 덜렁이면서 술만 들어갔다 하면…….’
정나은은 남편의 술버릇에 한숨을 쉰다. 평소 어딘가 나사 빠진 것처럼 덜렁거리고, 그저 사람 좋은 미소로 헤헤거리는 남편은 술만 들어갔다 하면 사람이 변한다. 원래 평소 화 안 내는 사람이 한 번 화를 내면 무서운 것처럼 남편도 약간 그런 스타일이다.
‘다만 해소 시키는 방향이…….’
평소에 자존심 강한 자신의 엉덩이 밑에 깔려 기가 죽은 탓인지, 대담해지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성적 욕망이 터져 나오는 스타일이다. 술만 마셨다하면 얼마나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오는지 자신이 피곤하건 말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사랑을 나눈다.
‘얼마 전에도 술이 들어갔다 싶더니만 결국 차에서…….’
멀쩡한 집 놔두고 집 주차장에서 한참을 그렇게 사랑을 나눴던 걸 떠올리자 뺨에 열기가 올라온다. 뭐 저런 면도 다 사랑스럽기에 결혼한 거다.
‘이럴 때라도 기를 펴줘야지.’
평소 남편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자존심 강한 자신을 데리고 살려면 알게 모르게 고충이 심할 것이다. 술기운에 터져 나온 그의 어리광을 이럴 때라도 받아줘야지 언제 받아주겠는가?
“이거나 먹고 잠이나 자.”
정나은은 헤실헤실 쪼개고 있는 남편에게 고기와 술을 반쯤 강제로 먹이며, 아예 보내버릴 생각을 한다. 어중간하게 먹었다간 또 밤이 고달파진다.
‘그나저나 그 빌어먹을 놈 한 방 먹이려고 왔는데…….’
정나은은 남편이 동료들에게 가버리자 음식을 먹으면서도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한 사람을 찾는다. 남편이 이곳에 오자고 했을 때 분명 그 빌어먹을 놈이 또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에 고민했지만 어차피 얼굴을 봐야 한 방 먹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엿 먹일지 모르겠단 말이야.’
사진까지 찍혔다. 오히려 그런 사진이 증거가 되 100% 잡아들일 수 있지만……이놈의 자존심은 그걸 용납 못 한다. 어떻게든 한 방 먹이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리는 그녀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강한 자존심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르겠다. 어차피 호랑이 굴에서 잠 잘 생각은 없으니 적당히 먹고 즐기다가 빠져야지.”
김우영이라는 짐승이 언제 아가리를 벌리고 덮쳐올지 모른다. 주위에 사람도 많고 남편도 있지만 유비무환이다. 집에 가서 자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김우영이 산다는 음식을 꾸역꾸역 입으로 쑤셔 넣는다. 그놈의 돈을 한 푼이라도 더 거덜 내기 위해…….
밤이 깊어감에 따라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높아지고, 동시에 발치에 굴러다니는 술병의 수는 늘어만 간다. 김우영은 펜션 주인이 준비해준 곳에서 절대로 술에는 손을 안 댄 채 음식을 먹으며 종종 회식자리에 걸음을 옮기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흐음~어쩔까나?’
정나은의 생각대로 김우영은 이런 자리를 비싼 돈 들여가며 마련한 이유가 다 있다. 안정수 사원의 아내 정나은의 캐주얼한 모습도 참 매력적이다. 그녀 말고도 유독 눈에 띄는 여성이 하나 더 이 자리에 와 있다.
박경원 사원의 아내인 김수진이다.
20대의 풋풋함이 남아있는 정나은과 달리 유부녀로써 무르익은 성숙미와 차분하면서도 수수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린 흑단 같은 머리는 살짝 펌을 넣어 웨이브가 들어갔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푸른색 파스텔 톤의 롱 프릴 원피스는 그녀의 차분함을 한층 살려준다. 원피스 바로 아래로 곧게 뻗은 가느다란 다리와 하이힐 신는 게 어색한지 때때로 불편해 하는 모습은 귀여움을 자아낸다.
“어떤가? 눈여겨 볼만한 사람은 있는가?”
“아 최 사장님이시군요. 흐흐 글쎄요? 사장님은 어떠신지?”
김우영과 아는 사이인지, 서로 능글 맞는 미소를 짓는 그는 이 펜션의 주인이다.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답게 살짝 작은 키가 흠이지만 호탕해 보이는 외모에 힘쓰는 일을 많이 하는지 구릿빛 피부에 알이 꽉 찬 근육들을 자랑하며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자네가 말한 년과 저기 저 년 어떤가?”
“역시 최 사장님 저랑 취향이 같으시군요.”
턱으로 정나은과 김수진을 이년, 저년 하는 최 사장은 김우영과 아는 사이를 넘어 이런 일을 할 때 동업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저 계약 관계로 만났는데, 성적인 취향까지 같고 행동으로 옮기는 대담함까지 갖춘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했다.
“그럼 자네가 말한 년은 분명 돌아갈 테니 침도 못 발라보겠군.”
“후후. 최 사장님 너무 아쉬워하시는 거 아닙니까?”
“뭐, 알아서 하게나. 그럼 난 평소처럼 술이나 돌리겠네.”
이 짓을 하루 이틀 한 게 아닌지, 최 사장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비장의 술을 꺼내들어 사람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직접 담금 과일주인데, 달달함 뒤에는 확 올라오는 그 취기에 다들 훅 가는 녀석이다. 최 사장이 노골적으로 박경원 사원과 그의 아내 김수진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걸 보곤 김우영은 누군가에게 시선을 살짝 던진다.
‘오늘의 메인 디시는 정나은이니깐.’
헤롱거리는 남편을 부축하며 그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매가 고양이처럼 올라간 정나은의 모습을 보며 펜션으로 들어갔다.
최 사장은 박경원과 그의 아내 김수진에게 고기를 구워주는 둥 친근하게 다가와 술을 건네기도 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김수진을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다. 차분하고 수수한 외모와 다르게 품이 넉넉한 원피스를 입고 있음에도 부풀어 오른 아름다운 곡선은 육감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허허~오늘 몸보신 가능하려나?’
집에서 집안일만 하는지, 창백하기 까지 한 피부에 사근사근한 목소리. 남편에게 헌신적인 모습이 천상여자다. 차분한 아내와는 다르게 남편 박경원은 상당히 음주가무를 즐기는 듯 아내에게도 권하고 신나서 떠들며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거하게 취했다. 그런 남편을 따라다니면서도 한 잔, 한 잔 받은 술 때문인지 김수진도 상당히 취한 모습이지만 남편은 아랑곳 않고 아내에게도 먹이고 자신도 먹이며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허허 박 선생님 아내분이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어떻게 주무시고 가실건지?”
최 사장은 박경원에게 시골 아저씨처럼 티 없는 미소로 다가간다. 최 사장의 말에 아내를 바라보자 불편한 하이힐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다리가 풀렸는지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아내가 위태롭게만 보인다. 초점도 잡히지 않는 게 완전히 갔다.
“벌써 가면 어떻게 이 여편네야?!”
박경원은 음주가무를 상당히 좋아한다. 밤은 이제부터인데 벌써 가버린 아내에게 입맛을 다시며 최 사장에게 아내를 부탁한다.
“사장님 그러면 자고 갈 테니 방 좀 준비해주시겠어요?”
“방이야 이미 준비 되어있죠. 제가 모셔드리고 올까요?”
박경원은 최 사장의 호의를 좋다고 받아들였다. 최 사장은 술에 잔뜩 취한 김수진을 부축해서 펜션으로 데려갔다. 작은 산속에 있는 이 펜션은 큰 건물 하나가 아닌, 띄엄띄엄 한 가족이 하나씩 들어갈 정도로 작은 오두막집으로 지어져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예? 예에…….”
낯선 남자가 자신을 부축하고 있기 때문일까? 김수진은 의식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중이다. 오두막집으로 올라가는 최 사장은 비어있는 집들을 지나쳐 조금 더 길게 뻗은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최 사장의 눈에 곧이어 작은 오두막집이 보이고 그곳으로 취한 김수진을 데리고 들어간다.
노골적으로 보통 오두막집보다 좀 높은 위치와 거리를 두고 지어진 이 오두막집은 평소에 잘 사용을 안 한다. 한적함을 느끼기 위해 특별히 요청한 고객이나, VIP를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구태여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이곳에 오두막집이 있는지도 모른다. 빽빽이 우거진 산림 때문에 방음은 더 할 나위 없다.
하지만 웬걸? 최 사장은 금세 오두막집에서 나와 김수진의 남편 박경원에게 돌아와 내외분을 잘 모셔놓고 왔다고 보고까지 해준다. 이에 박경원은 안심하고 더욱 음주가무에 힘을 쏟는다. 최 사장은 그런 박경원 곁에 붙어 더욱 그에게 음주가무를 즐기게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김수진이 잠들어 있는 오두막집에서 최 사장이 나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을 틈타 한 인영이 조용히 김수진이 잠들어 있는 오두막집으로 들어간다. 잠겨있는 오두막집을 너무나 자연스레 들어가는 한 인영에 의심을 품을 새도 없이 그 안으로 사라져 버린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펜션 아래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식이 서서히 파장으로 치달아갈 무렵 굳게 닫혀있던 오두막집의 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불쑥 튀어나와 칙 소리와 함께 입에 담배를 꼬나문다. 라이터 불빛에 비친 인영의 얼굴은 다름 아닌 김우영이었다.
“슬슬 가볼까?”
김우영은 담배를 끄고 회식자리로 걸음을 옮긴다. 슬슬 파장할 시간인지, 거하게 취해 널브러져 있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보인다. 이미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간 건지, 아니면 펜션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는지 시작했을 때보다 사람이 많이 줄어있다.
김우영은 최 사장에게 눈짓으로 무언가 신호를 보내자 최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곁에 있는 박경원에게 더욱 술을 권하며 달라붙어 있다. 김우영은 시선을 돌려 남아있는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자 안정수와 그의 아내 정나은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오호? 예정대로 잘 되어 가는데?’
솔직히 그들이 남아있을지 어떨지는 반쯤 도박이었다. 술에 거하게 취한 안정수가 오랜만에 고삐를 풀고 음주가무를 즐긴 것도 있지만, 정나은이 김우영의 돈을 한 푼이라도 거덜 내기 위해 남아 꿋꿋이 음식을 배속으로 쑤셔 넣은 탓도 있다.
“자~슬슬 파장합시다. 아 물론 여기서 자고 가실 분들은 더 즐기셔도 무방하나, 대리기사들도 퇴근해야죠.”
김우영의 파장선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사람과 남아서 더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최 사장이 돌아갈 사람들 수를 조사하는 도중 어째서인지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네요. 준비해둔 대리기사 수가 부족하겠는데요?”
사람들은 그 소리에 경악한다. 하지만 최 사장은 걱정 말라는 듯 안심시키며 한 사람정도 부족하다는 뜻을 전하며 자신이 대신 끌고 가주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최 사장은 사람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공했을 뿐이지 한 모금도 술을 마시지 않았던 걸 떠올린다.
“그럼 다들 월요일에 보세.”
그렇게 대리기사와 짝을 지어 하나, 둘 집으로 향하는 이들을 보낸 뒤 최 사장이 마지막 남은 사람을 부른다. 다름 아닌 안정수와 정나은 부부였다.
“아 미안한데, 나도 좀 데려다 줄 수 있나? 술을 마셔서 차를 끌고 갈 순 없네. 중간에 내려줘도 되니.”
김우영은 술은 입에 대지 않았으면서도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허허 미리 말씀 하시지…….”
최 사장은 굉장히 곤란한 듯 안정수와 정나은 부부의 눈치를 본다. 안정수는 얼마나 술을 먹었는지 완전히 축 처져 코까지 골고 있다. 정나은은 이 빌어먹을 남편을 부축하느라 힘든 것인지, 약간 먹은 술 때문인지 뺨이 살짝 발그레할 뿐이라 맨 정신이다. 그렇기에 최 사장의 말에 의사결정을 자신이 해야 한다.
‘저 빌어먹을 놈이 무슨 꿍꿍이지?’
곤란해 하는 최 사장과 김우영은 아는 사이인 듯 보여도 서로 말을 높이는 걸 봐선 그저 면식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방패막이가 될 남편을 자신의 손으로 보내버린 걸 아쉬워하며 머리를 굴린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술 안 먹이는 건데.’
자신의 손으로 완전히 보내버린 남편의 자는 얼굴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다. 취하기만 하면 침대로 기어들어오는 버릇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떡이 되게 안 보내버렸을 것이다.
“아 내외분 주시겠어요? 제가 차까지 부축해드리죠.”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 최 사장이 일단 안정수를 받아들더니 비척비척 차로 간다. 정나은도 천천히 최 사장을 따라가며 뒤 따라오는 김우영의 기척에 입맛을 다신다.
‘……설마 남편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는데 무슨 짓을 하진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고,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만 자존심 강한 그녀는 자신이 피한다는 기색을 보여주긴 죽어도 싫어서 그의 동승을 허락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최 사장과 김우영은 속으로 웃으며, 재빨리 남편을 차에 태운다.
“아……잠깐.”
“자 그럼 어서 가죠. 저도 돌아와야 하니까요.”
정나은이 곤란해 하며 최 사장을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재빨리 안정수를 보조석에 태워버린다. 당연히 보조석엔 김우영이 타고 남편과 자신이 뒷좌석에 탈 줄 알았건만 이 눈치 없는 펜션 사장은 그냥 쑤셔 넣더니 벙 찐 정나은과 김우영을 재촉한다.
“안 타시나?”
김우영은 끌끌거리며 재빨리 뒷좌석에 탄다. 정나은은 그의 조롱에 까득 이를 갈며 눈매를 한참 치켜 올린 채 자존심이 팍 상한 얼굴로 뒷좌석에 올라탄다. 음주가무가 한참인 펜션을 뒤로하고 네 사람을 태운 차는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 서울 근교에 존재하는 작은 펜션에서 출발한 안정수와 정나은 두 부부의 차는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잘 닦인 도로를 달리고 있을 두 부부의 차는 어째서인지, 아직도 비 포장된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서울 근교여도 사는 사람 수도 적고, 한적하며 고요하기까지 한 이 도로를 천천히 나아가던 그 자동차는 도로마저 벗어나 어둠이 더욱 짙게 깔린 곳으로 이동한다. 들짐승의 기척조차 나지 않는 어두운 곳에 서서히 차가 정차하더니 완전히 시동마저 끈다.
그나마 자동차 라이트에서 나오던 불빛마저 사라지자 순식간에 어둠이 들이닥쳐 자동차를 감싼다. 곧이어 운전석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내렸는데 안정수와 정나은 두 부부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줘야 할 최 사장이었다. 최 사장은 어둡고 길마저 보이지 않는 이곳을 잘 아는 눈치다. 최 사장은 뒷좌석 창문을 주먹으로 탁탁 내려치며 간다고 신호를 보내며 중얼거린다.
“자~굿을 봤으니, 이제 떡을 먹으러 가보실까?”
최 사장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차해둔 자신의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잘 무르익은 차분하면서도 수수한 그 육감적인 남의 떡을 먹기 위해 서둘러 펜션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최 사장이 떠난 인적도 드물고, 어둠마저 짙은 곳에 주차된 두 부부의 차는 서서히 들썩이며 꿀렁이기 시작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어도 착각할 리 없는 육덕지면서 뽀얀 여성의 다리가 때때로 자동차 창문으로 보이며, 적막하기에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와 뜨거움이 묻어나는 신음소리는 몇 시간이고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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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는 위에 일어난 사건들의 여성 인물들 시점인데 원하시는 분들이 많으면 새로운 등장인물 김수진 시점도 쓸까 생각중입니다. 의견표명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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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이 숨 막히는 곳에서 뛰쳐나가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이 종종 찾는 곳이 있다. 차를 타고 서울근교와 경기도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연산림장이나 작은 펜션들은 그런 지친 도시 현대인들을 상대로 장소를 제공해주는 곳이 많다.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말이 있듯 금요일 저녁이 되면 이런 펜션들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서울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한적한 마을의 이름도 없는 작은 뒷산에 지어진 펜션도 오늘은 만원사례를 맞이하고 있다.
주위에 마을이라고 해봐야 몇 가구 살지도 않고, 절경도 없고, 그저 적막함과 한적함만이 장점인 이 펜션. 서울에서 보기 힘든 드넓은 밤하늘과 조명대신 캠프파이어를 설치해 분위기를 잡았으며,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맛있는 바비큐, 신선한 음식들이 계속해서 제공되고 있어 지친 현대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생각보다 제대로인데?”
“……그러네.”
캐주얼한 복장의 안정수와 그의 아내 정나은도 그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있다. 이 펜션에 모인 사람들은 안정수에겐 매일같이 살을 비비고 사는 회사동료들이었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부부동반으로 이곳에 놀러왔다.
김우영 부장이 제안했던 부부동반인 내실다지기라는 명목하의 큰 회식이다.
지나가는 말투로 한 줄 알았던 부부동반의 회식은 김우영 부장의 적극적인 추진에 따라 그 규모가 커져 당일치기긴 해도 서울 근교의 펜션까지 빌려 이렇게 모인 것이다.
‘그나저나 통 크네…….’
지금 이 펜션을 빌린 것도, 음식을 내놓는 것도 전부 김우영 부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금요일 밤이라는 짧다면 짧고, 다음 날 쉬는 날이라는 점도 고려해 주도면밀하게 날짜까지 잡아 사원들이 도망 못 가게 계획을 잡은 것도 참 용하다.
‘그래도 여사원들은 도망갔지만.’
대부분 이 회식에 참여한 건 영업부 남성 사원들이다. 물론 부부동반이라는 점 때문에 남녀 비율이 안 맞는 건 아니지만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 여사원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졌다. 공짜 밥과 자연이 가득한 펜션에서 하룻밤이라는 좋은 미끼를 덥석 문 여사원도 몇몇 되지만…….
대부분 차를 끌고 와 술을 안 마실 줄 알았던 이 회식은 다음 날 오전 12시까지 이 펜션을 대실했다는 김우영 부장답지 않은 통 큼과 배려에 다들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다. 거기에 자지 않고 돌아갈 사람을 위해 펜션 측에서 대리기사도 준비해놨다고 하니 어찌 술을 안마시고 버티겠는가?
완전히 축제가 벌어졌다. 오랜만에 정말 회식다운 회식에 다들 졸라맸던 허리띠 풀고 먹고, 붓고 계급장 뗀 채 놀고 있다.
‘정작 당사자는 자리를 슬슬 피해준단 말이야?’
김우영 부장은 정말로 사원들을 편하게 즐기게 해주려고 배려를 한 것일까? 처음에만 부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덕담과 이런 저런 말을 한 뒤 잠깐, 잠깐씩 회식자리에 모습을 보여줄 뿐 어딘가에 처박혀서 모습조차 보여주질 않는다.
“아무렴 어때.”
안정수는 피식 웃곤 그저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도 다지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술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랑스런 아내까지 곁에 있으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런데 온 것도 오랜만이다. 그치?”
“응? 응. 그렇긴 하네.”
고기를 접시에 나눠담고 있던 아내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안정수는 알딸딸하게 들어간 술 때문에 더욱 아내가 예쁘게 보인다.
어스름한 어둠 속 캠프파이어 불빛에 보이는 아내는 자신처럼 편한 복장인데, 여전히 긴 생머리는 깔끔하게 틀어 올려 고정시켰고, 산속은 밤이 되면 추울까봐 입고 온 크림색 스웨터와 하얀색 스키니 진을 입었다. 직장 여성의 전유물인 하이힐도 벗어던지고 편안한 운동화까지 신으니 지적이고, 청순하기만 하던 아내가 20대 대학생처럼 쾌활한 분위기를 띈다.
‘내 아내지만 자기 관리는 참 잘해요.’
군살하나 없는 매끄러운 라인에 크림색 스웨터 위로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두 가슴과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 때문에 탄력적으로 툭 튀어나온 아내의 업 된 엉덩이는 때려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헤실헤실 징그럽게 웃는 안정수를 눈치 챈 걸까? 정나은은 고양이처럼 눈매가 올라가며 남편의 징그러운 시선을 털어내듯 몸을 휙 돌려버린다.
찰싹!
“꺅?!”
사람들의 시끌시끌한 웃음소리와 말소리 속에 찰진 소리와 함께 정나은의 귀여운 비명이 섞이더니 곧 흩어져 사라진다.
“이 사람이?!”
“하하하 우리 아내 엉덩이 참 예쁘네?”
고양이처럼 확 치켜 올라간 정나은의 눈매는 완전 무장상태다. 평**면 아내의 저런 날카로운 태도에 깨갱하며 꼬리를 말았겠지만 술만 들어가면 이상하리만치 대담해지는 그다. 그렇기에 그저 고양이처럼 날 선 아내의 모습에도 하하 웃을 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모습에 정나은은 피식 웃으며 한숨을 쉴 뿐이다.
‘하여간 이 사람은 평소에 그렇게 순댕이에 덜렁이면서 술만 들어갔다 하면…….’
정나은은 남편의 술버릇에 한숨을 쉰다. 평소 어딘가 나사 빠진 것처럼 덜렁거리고, 그저 사람 좋은 미소로 헤헤거리는 남편은 술만 들어갔다 하면 사람이 변한다. 원래 평소 화 안 내는 사람이 한 번 화를 내면 무서운 것처럼 남편도 약간 그런 스타일이다.
‘다만 해소 시키는 방향이…….’
평소에 자존심 강한 자신의 엉덩이 밑에 깔려 기가 죽은 탓인지, 대담해지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성적 욕망이 터져 나오는 스타일이다. 술만 마셨다하면 얼마나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오는지 자신이 피곤하건 말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사랑을 나눈다.
‘얼마 전에도 술이 들어갔다 싶더니만 결국 차에서…….’
멀쩡한 집 놔두고 집 주차장에서 한참을 그렇게 사랑을 나눴던 걸 떠올리자 뺨에 열기가 올라온다. 뭐 저런 면도 다 사랑스럽기에 결혼한 거다.
‘이럴 때라도 기를 펴줘야지.’
평소 남편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자존심 강한 자신을 데리고 살려면 알게 모르게 고충이 심할 것이다. 술기운에 터져 나온 그의 어리광을 이럴 때라도 받아줘야지 언제 받아주겠는가?
“이거나 먹고 잠이나 자.”
정나은은 헤실헤실 쪼개고 있는 남편에게 고기와 술을 반쯤 강제로 먹이며, 아예 보내버릴 생각을 한다. 어중간하게 먹었다간 또 밤이 고달파진다.
‘그나저나 그 빌어먹을 놈 한 방 먹이려고 왔는데…….’
정나은은 남편이 동료들에게 가버리자 음식을 먹으면서도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한 사람을 찾는다. 남편이 이곳에 오자고 했을 때 분명 그 빌어먹을 놈이 또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에 고민했지만 어차피 얼굴을 봐야 한 방 먹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엿 먹일지 모르겠단 말이야.’
사진까지 찍혔다. 오히려 그런 사진이 증거가 되 100% 잡아들일 수 있지만……이놈의 자존심은 그걸 용납 못 한다. 어떻게든 한 방 먹이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리는 그녀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강한 자존심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르겠다. 어차피 호랑이 굴에서 잠 잘 생각은 없으니 적당히 먹고 즐기다가 빠져야지.”
김우영이라는 짐승이 언제 아가리를 벌리고 덮쳐올지 모른다. 주위에 사람도 많고 남편도 있지만 유비무환이다. 집에 가서 자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김우영이 산다는 음식을 꾸역꾸역 입으로 쑤셔 넣는다. 그놈의 돈을 한 푼이라도 더 거덜 내기 위해…….
밤이 깊어감에 따라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높아지고, 동시에 발치에 굴러다니는 술병의 수는 늘어만 간다. 김우영은 펜션 주인이 준비해준 곳에서 절대로 술에는 손을 안 댄 채 음식을 먹으며 종종 회식자리에 걸음을 옮기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흐음~어쩔까나?’
정나은의 생각대로 김우영은 이런 자리를 비싼 돈 들여가며 마련한 이유가 다 있다. 안정수 사원의 아내 정나은의 캐주얼한 모습도 참 매력적이다. 그녀 말고도 유독 눈에 띄는 여성이 하나 더 이 자리에 와 있다.
박경원 사원의 아내인 김수진이다.
20대의 풋풋함이 남아있는 정나은과 달리 유부녀로써 무르익은 성숙미와 차분하면서도 수수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린 흑단 같은 머리는 살짝 펌을 넣어 웨이브가 들어갔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푸른색 파스텔 톤의 롱 프릴 원피스는 그녀의 차분함을 한층 살려준다. 원피스 바로 아래로 곧게 뻗은 가느다란 다리와 하이힐 신는 게 어색한지 때때로 불편해 하는 모습은 귀여움을 자아낸다.
“어떤가? 눈여겨 볼만한 사람은 있는가?”
“아 최 사장님이시군요. 흐흐 글쎄요? 사장님은 어떠신지?”
김우영과 아는 사이인지, 서로 능글 맞는 미소를 짓는 그는 이 펜션의 주인이다.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답게 살짝 작은 키가 흠이지만 호탕해 보이는 외모에 힘쓰는 일을 많이 하는지 구릿빛 피부에 알이 꽉 찬 근육들을 자랑하며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자네가 말한 년과 저기 저 년 어떤가?”
“역시 최 사장님 저랑 취향이 같으시군요.”
턱으로 정나은과 김수진을 이년, 저년 하는 최 사장은 김우영과 아는 사이를 넘어 이런 일을 할 때 동업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저 계약 관계로 만났는데, 성적인 취향까지 같고 행동으로 옮기는 대담함까지 갖춘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했다.
“그럼 자네가 말한 년은 분명 돌아갈 테니 침도 못 발라보겠군.”
“후후. 최 사장님 너무 아쉬워하시는 거 아닙니까?”
“뭐, 알아서 하게나. 그럼 난 평소처럼 술이나 돌리겠네.”
이 짓을 하루 이틀 한 게 아닌지, 최 사장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비장의 술을 꺼내들어 사람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직접 담금 과일주인데, 달달함 뒤에는 확 올라오는 그 취기에 다들 훅 가는 녀석이다. 최 사장이 노골적으로 박경원 사원과 그의 아내 김수진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걸 보곤 김우영은 누군가에게 시선을 살짝 던진다.
‘오늘의 메인 디시는 정나은이니깐.’
헤롱거리는 남편을 부축하며 그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매가 고양이처럼 올라간 정나은의 모습을 보며 펜션으로 들어갔다.
최 사장은 박경원과 그의 아내 김수진에게 고기를 구워주는 둥 친근하게 다가와 술을 건네기도 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김수진을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다. 차분하고 수수한 외모와 다르게 품이 넉넉한 원피스를 입고 있음에도 부풀어 오른 아름다운 곡선은 육감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허허~오늘 몸보신 가능하려나?’
집에서 집안일만 하는지, 창백하기 까지 한 피부에 사근사근한 목소리. 남편에게 헌신적인 모습이 천상여자다. 차분한 아내와는 다르게 남편 박경원은 상당히 음주가무를 즐기는 듯 아내에게도 권하고 신나서 떠들며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거하게 취했다. 그런 남편을 따라다니면서도 한 잔, 한 잔 받은 술 때문인지 김수진도 상당히 취한 모습이지만 남편은 아랑곳 않고 아내에게도 먹이고 자신도 먹이며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허허 박 선생님 아내분이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어떻게 주무시고 가실건지?”
최 사장은 박경원에게 시골 아저씨처럼 티 없는 미소로 다가간다. 최 사장의 말에 아내를 바라보자 불편한 하이힐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다리가 풀렸는지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아내가 위태롭게만 보인다. 초점도 잡히지 않는 게 완전히 갔다.
“벌써 가면 어떻게 이 여편네야?!”
박경원은 음주가무를 상당히 좋아한다. 밤은 이제부터인데 벌써 가버린 아내에게 입맛을 다시며 최 사장에게 아내를 부탁한다.
“사장님 그러면 자고 갈 테니 방 좀 준비해주시겠어요?”
“방이야 이미 준비 되어있죠. 제가 모셔드리고 올까요?”
박경원은 최 사장의 호의를 좋다고 받아들였다. 최 사장은 술에 잔뜩 취한 김수진을 부축해서 펜션으로 데려갔다. 작은 산속에 있는 이 펜션은 큰 건물 하나가 아닌, 띄엄띄엄 한 가족이 하나씩 들어갈 정도로 작은 오두막집으로 지어져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예? 예에…….”
낯선 남자가 자신을 부축하고 있기 때문일까? 김수진은 의식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중이다. 오두막집으로 올라가는 최 사장은 비어있는 집들을 지나쳐 조금 더 길게 뻗은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최 사장의 눈에 곧이어 작은 오두막집이 보이고 그곳으로 취한 김수진을 데리고 들어간다.
노골적으로 보통 오두막집보다 좀 높은 위치와 거리를 두고 지어진 이 오두막집은 평소에 잘 사용을 안 한다. 한적함을 느끼기 위해 특별히 요청한 고객이나, VIP를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구태여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이곳에 오두막집이 있는지도 모른다. 빽빽이 우거진 산림 때문에 방음은 더 할 나위 없다.
하지만 웬걸? 최 사장은 금세 오두막집에서 나와 김수진의 남편 박경원에게 돌아와 내외분을 잘 모셔놓고 왔다고 보고까지 해준다. 이에 박경원은 안심하고 더욱 음주가무에 힘을 쏟는다. 최 사장은 그런 박경원 곁에 붙어 더욱 그에게 음주가무를 즐기게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김수진이 잠들어 있는 오두막집에서 최 사장이 나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을 틈타 한 인영이 조용히 김수진이 잠들어 있는 오두막집으로 들어간다. 잠겨있는 오두막집을 너무나 자연스레 들어가는 한 인영에 의심을 품을 새도 없이 그 안으로 사라져 버린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펜션 아래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식이 서서히 파장으로 치달아갈 무렵 굳게 닫혀있던 오두막집의 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불쑥 튀어나와 칙 소리와 함께 입에 담배를 꼬나문다. 라이터 불빛에 비친 인영의 얼굴은 다름 아닌 김우영이었다.
“슬슬 가볼까?”
김우영은 담배를 끄고 회식자리로 걸음을 옮긴다. 슬슬 파장할 시간인지, 거하게 취해 널브러져 있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보인다. 이미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간 건지, 아니면 펜션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는지 시작했을 때보다 사람이 많이 줄어있다.
김우영은 최 사장에게 눈짓으로 무언가 신호를 보내자 최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곁에 있는 박경원에게 더욱 술을 권하며 달라붙어 있다. 김우영은 시선을 돌려 남아있는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자 안정수와 그의 아내 정나은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오호? 예정대로 잘 되어 가는데?’
솔직히 그들이 남아있을지 어떨지는 반쯤 도박이었다. 술에 거하게 취한 안정수가 오랜만에 고삐를 풀고 음주가무를 즐긴 것도 있지만, 정나은이 김우영의 돈을 한 푼이라도 거덜 내기 위해 남아 꿋꿋이 음식을 배속으로 쑤셔 넣은 탓도 있다.
“자~슬슬 파장합시다. 아 물론 여기서 자고 가실 분들은 더 즐기셔도 무방하나, 대리기사들도 퇴근해야죠.”
김우영의 파장선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사람과 남아서 더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최 사장이 돌아갈 사람들 수를 조사하는 도중 어째서인지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네요. 준비해둔 대리기사 수가 부족하겠는데요?”
사람들은 그 소리에 경악한다. 하지만 최 사장은 걱정 말라는 듯 안심시키며 한 사람정도 부족하다는 뜻을 전하며 자신이 대신 끌고 가주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최 사장은 사람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공했을 뿐이지 한 모금도 술을 마시지 않았던 걸 떠올린다.
“그럼 다들 월요일에 보세.”
그렇게 대리기사와 짝을 지어 하나, 둘 집으로 향하는 이들을 보낸 뒤 최 사장이 마지막 남은 사람을 부른다. 다름 아닌 안정수와 정나은 부부였다.
“아 미안한데, 나도 좀 데려다 줄 수 있나? 술을 마셔서 차를 끌고 갈 순 없네. 중간에 내려줘도 되니.”
김우영은 술은 입에 대지 않았으면서도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허허 미리 말씀 하시지…….”
최 사장은 굉장히 곤란한 듯 안정수와 정나은 부부의 눈치를 본다. 안정수는 얼마나 술을 먹었는지 완전히 축 처져 코까지 골고 있다. 정나은은 이 빌어먹을 남편을 부축하느라 힘든 것인지, 약간 먹은 술 때문인지 뺨이 살짝 발그레할 뿐이라 맨 정신이다. 그렇기에 최 사장의 말에 의사결정을 자신이 해야 한다.
‘저 빌어먹을 놈이 무슨 꿍꿍이지?’
곤란해 하는 최 사장과 김우영은 아는 사이인 듯 보여도 서로 말을 높이는 걸 봐선 그저 면식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방패막이가 될 남편을 자신의 손으로 보내버린 걸 아쉬워하며 머리를 굴린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술 안 먹이는 건데.’
자신의 손으로 완전히 보내버린 남편의 자는 얼굴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다. 취하기만 하면 침대로 기어들어오는 버릇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떡이 되게 안 보내버렸을 것이다.
“아 내외분 주시겠어요? 제가 차까지 부축해드리죠.”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 최 사장이 일단 안정수를 받아들더니 비척비척 차로 간다. 정나은도 천천히 최 사장을 따라가며 뒤 따라오는 김우영의 기척에 입맛을 다신다.
‘……설마 남편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는데 무슨 짓을 하진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고,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만 자존심 강한 그녀는 자신이 피한다는 기색을 보여주긴 죽어도 싫어서 그의 동승을 허락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최 사장과 김우영은 속으로 웃으며, 재빨리 남편을 차에 태운다.
“아……잠깐.”
“자 그럼 어서 가죠. 저도 돌아와야 하니까요.”
정나은이 곤란해 하며 최 사장을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재빨리 안정수를 보조석에 태워버린다. 당연히 보조석엔 김우영이 타고 남편과 자신이 뒷좌석에 탈 줄 알았건만 이 눈치 없는 펜션 사장은 그냥 쑤셔 넣더니 벙 찐 정나은과 김우영을 재촉한다.
“안 타시나?”
김우영은 끌끌거리며 재빨리 뒷좌석에 탄다. 정나은은 그의 조롱에 까득 이를 갈며 눈매를 한참 치켜 올린 채 자존심이 팍 상한 얼굴로 뒷좌석에 올라탄다. 음주가무가 한참인 펜션을 뒤로하고 네 사람을 태운 차는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 서울 근교에 존재하는 작은 펜션에서 출발한 안정수와 정나은 두 부부의 차는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잘 닦인 도로를 달리고 있을 두 부부의 차는 어째서인지, 아직도 비 포장된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서울 근교여도 사는 사람 수도 적고, 한적하며 고요하기까지 한 이 도로를 천천히 나아가던 그 자동차는 도로마저 벗어나 어둠이 더욱 짙게 깔린 곳으로 이동한다. 들짐승의 기척조차 나지 않는 어두운 곳에 서서히 차가 정차하더니 완전히 시동마저 끈다.
그나마 자동차 라이트에서 나오던 불빛마저 사라지자 순식간에 어둠이 들이닥쳐 자동차를 감싼다. 곧이어 운전석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내렸는데 안정수와 정나은 두 부부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줘야 할 최 사장이었다. 최 사장은 어둡고 길마저 보이지 않는 이곳을 잘 아는 눈치다. 최 사장은 뒷좌석 창문을 주먹으로 탁탁 내려치며 간다고 신호를 보내며 중얼거린다.
“자~굿을 봤으니, 이제 떡을 먹으러 가보실까?”
최 사장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차해둔 자신의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잘 무르익은 차분하면서도 수수한 그 육감적인 남의 떡을 먹기 위해 서둘러 펜션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최 사장이 떠난 인적도 드물고, 어둠마저 짙은 곳에 주차된 두 부부의 차는 서서히 들썩이며 꿀렁이기 시작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어도 착각할 리 없는 육덕지면서 뽀얀 여성의 다리가 때때로 자동차 창문으로 보이며, 적막하기에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와 뜨거움이 묻어나는 신음소리는 몇 시간이고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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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는 위에 일어난 사건들의 여성 인물들 시점인데 원하시는 분들이 많으면 새로운 등장인물 김수진 시점도 쓸까 생각중입니다. 의견표명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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